칼 세이건 - 코스모스
중반까지 읽고 든 생각
1. 중반까지의 총평
씹어도 씹어도 단물이 계속 나오는 책이다. 현대 고전의 전범이다. 아들러 모티머의 <How to read a book>에 따르면, 좋은 책은 정성스럽게, 능동적으로 읽으라고 했다. 모름지기 열정(Passion)이라는 단어는 고통(Pati)에 어원을 두고 있지 않은가. 고통에서 인내(Patience)라는 말도 나왔다.
2. 천천히 읽어야 보이는 것들
벽돌책을 한 문장 한 문장 완벽하게 이해하며 읽기란 쉽지 않다. 의지와 여유를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책은 한 번 제대로 읽는 것이, 여러 번 대충 읽는 것보다 저자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을까?
독서 노트에 꼼꼼히 정리해가며 읽다 보니, 예전에 훑어 읽었을 때 지나친 내용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내가 모르는 게 정말 많다는 것을 깨달은 반면 저자의 박식함에 적잖이 놀랐다.
특히 저자가 다루는 '지식들'은 정선된 것들이어서 더 귀하다. 꼭 알아야 할 것들로만 이 두꺼운 책을 꽉 채웠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고전답다.
1) 중요한 지식(교양)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2장에서 인위 선택을 자연 도태에 앞서 설명한 것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전개를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여기서 '도태'라는 개념을 잘못 이해하면 생존 편향으로 이어진다. 책은 여러가지 예를 들어 그 실수를 방지한다.
헤이케 게와 젖소, 사냥개, 옥수수 같은 것은 인위 선택의 예다. 종은 어떠한 형태를 지향하지도, 변화하지도 않는다. 인간에게 혹은 자연에게 선택받은 형태의 종이 살아남을 뿐이다. 그러한 형태로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형태만 남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이오니아 학자들의 작은 열전이 펼쳐지고, 르네상스 이후 과학도 소개가 된다. 다양한 천체에 대한 설명은 물론, 화학과 생물학도 폭넓게 다루기 때문에 고등학교 이과 수업의 전반을 훑는 느낌이 있다.
주석을 자세히 읽어보면 케플러의 3법칙이 소개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궤도 운동을 하는 두 천체 사이 속도 차이도 계산해볼 기회가 생긴다. 주석의 계산에 부호 오타가 있긴 한데, 그마저도 좋은 연습거리가 된다.
적당히 알고 있는 내용을 책에 쓸 수는 없다. 아마도 저자는 방대한 영역에서 깊이 있는 지식을 갖고 있는 지식인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Chapter 제목에 "푸가"를 붙인 것을 보면 클래식 음악에도 관심이 깊었던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2) 개념 밀도가 높다.
천천히 읽으며 느낀 두 번째 특징은 문장들이 상당히 압축적이고 논리적이라는 것이다. 각 장에서 저자는 학자들이 세웠다가 효과적으로 반박되고 폐기된 이론과 가설들을 소개한다. 그 내용을 "그렇구나" 하고 따라가자면 금방 지나가게 되는데, "완전히 이해해보자"라고 덤비면 오래 생각해야 한다. 자료 조사도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고, 저자의 논리도 되짚어보게 된다. 명제의 역과 대우를 따져보게 되는 것이다. 독자를 그런 사고 과정에 초대하는 책이다.
예를 들어 4장 초반, 저자는 퉁구스카 사건의 원인으로 학자들이 내세운 가설 중 하나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어떤 학자들은 이 사건의 원인을 물질과 반물질의 소멸 현상에서 찾으려고 했다. 날아가던 반물질 조각이 어쩌다 물질인 지구와 충돌해 엄청난 양의 감마선 복사를 방출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충돌 지점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지 않았으므로 그 제안은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쉽게 넘어갈 만한 단 세 문장이다. 하지만 파인만 기법을 적용해서, 이 내용을 정말 쉽게 설명하려고 해보자.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반물질이 무엇인지, 물질과 반물질의 소멸 현상이 무엇인지, 감마선이 무엇인지, 복사가 무엇인지, 방사능이 무엇인지 모르면 그냥 종이에 적힌 문장을 외우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좀 더 제대로 알고 설명해본다면, 아래와 같이 풀어서 설명해야 할 것이다.
가. 물질, 반물질, 소멸 현상
지구는 물질이다. 우리가 만지고 보는 모든 것은 물질이다. 그런데 우주에는 이 모든 물질과 쌍을 이루는 반물질이 있다. 이 둘이 만나면 소멸 현상(annihilation)을 일으키는데, 이 때 두 물질의 질량이 모두 에너지로 바뀌는 놀라운 현상이 있다. 질량이 에너지로 바뀌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그 파급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다.
나. 전자기파, 감마선
소멸 현상에서 생기는 에너지는 주로 전자기파의 형태로 방출된다. 전자기파 스펙트럼은 파장의 길이가 긴 순서대로 아래와 같다.
라디오파, 마이크로파,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엑스선, 감마선.
파장의 길이는 주파수와 반비례하고(광속 = 주파수 x 파장 길이), 주파수는 에너지와 비례한다(에너지 = 플랑크 상수 x 주파수). 따라서 파장 길이가 짧은 감마선은 에너지가 아주 높다.
다. 복사, 방사, 이온화, 방사능, 방사성 물질
우주는 진공이므로 물이나 공기 같은 매질이 없다. 매질이 없어도 전자기파가 전달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복사 또는 방사라고 한다.
원자나 분자는 보통 양성자와 전자 수가 같은 중성 상태를 유지한다. 감마선처럼 에너지가 큰 전자기파는 원자/분자의 전자 수를 바꾸어 '이온화' 한다. 이온은 전하를 띠는 원자/분자를 의미한다.
이러한 원자/분자의 이온화를 전리(ionization)라고 한다. 우리 몸의 세포에서 이온화가 일어나면 세포가 파괴되고 DNA가 손상된다. 그래서 감마선 복사 같이 전리를 일으키는 복사를 전리성 복사라고 따로 분류한다.
전리성 복사를 일으키는 전자기파(e.g. 감마선)는 방사선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방사선을 방출하는 능력을 방사능이라고 하고, 방사능을 가진 물질을 방사성 물질이라고 한다.
라. 퉁구스카 사건 해석
퉁구스카 사건이 일어난 지역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 지역에서 감마선이 방출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물질과 반물질의 충돌(=소멸) 현상을 원인으로 주장하려면, 당연한 결과물인 감마선이 방출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감마선이 방출되지 않았으므로, 소멸 현상은 이유가 될 수 없다. 따라서 반물질설은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3. 소감
저자의 짧은 문장을 풀어서 쓰다 보면, 그 분량이 몇 배로 늘어난다. 과장하자면 코스모스의 한 쪽은 웬만한 책의 한 권에 준한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언제 읽게 될지 모르겠다. 올해 안에는 가능할지...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 않긴 하다. 그래서 중간중간 쉬운 책들을 섞어서 읽고 있다. 코스모스를 읽다가 좀 더 일반적인(?) 책을 읽으면 적토마를 탄 것처럼 바람을 가르는 속도로 책을 읽게 된다.
모티머 아들러는 쉬운 책은 피하라고 한다. 과격한 조언이다. 하지만 일리가 있다.
나는 '명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1) 지식을 넓혀주고, (2) 사고력을 길러주고, (3) 관점을 더해주는 책. 이 셋을 지식, 지능, 지혜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셋 중 하나를 만족하는 책은 많지만 훑어 읽어도 충분하고, 셋 중 둘을 만족하는 책은 꽤 좋은 책이지만 일부러 느리게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코스모스는 세 가지를 모두 만족한다. 그리고 이런 책은 의도적으로 느리게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