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드인에 올린 글을 전재하였습니다.)
IT 컨설팅이라는 적적한 시장에 매력을 느끼고 500만 원 짜리 프로젝트로 첫 삽 뜬 지 2년쯤 됐다. 이제는 AWS, 네이버, 올리브영, 그 밖에도 큰 고객들과 수억원대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처음부터 재밌었지만 지금은 더 재밌는데, 왜 이리 재밌을까. 관련 없어보이는 여러 경험의 결정체라는 점이 한몫한다.
우선 다빈치가 하는 일의 일면에선 베인에서 컨설턴트로, IMM에서 사모펀드 투자 담당자로서 배운 것들이 잘 쓰인다. 컨설턴트/투자자는 복잡다단한 비즈니스를 겨우 수십 장의 슬라이드로 단순화하고 그걸 바탕으로 의사결정 하는데도 성과를 내는 신기한 집단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해도 코끼리를 잘 다룬달까… "The map is not the territory"라는 유명한 말이 있는데, 컨설턴트나 투자자들은 지도만 보고도 목적지에 도달하는 독도법의 전문가 집단이다.
이후 디어에서 만난 또 다른 엘리트 집단이 있다. 바로 탑티어 개발자/디자이너다. 이들의 세계에도 MBB 같은 엘리트 양성 기관이 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몇 년 전 배달의 민족은 국내 최고의 엘리트 사관학교였다. 배민을 고향으로 둔 개발자들이 다빈치에서 맹활약 중이다. 이들은 실제로 쓰이는 제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일의 구체성이 컨설팅/투자의 대척점에 있다.
그런데 고객사 경영진 분들은 개발자를 조금 피곤해하시는 것 같다. 그 분들이 어려워하는 것은 Exec summary 장표에 있는 커다란 구두점 항목 하나를 수만 줄의 코드로 조탁하는 과정이다.
경영진은 작업을 구체화 하기 위해 밑으로, 밑으로, 밑으로 일을 내린다. 그런데 개발 업무는 그냥 밑으로 내린다고 해서 어찌저찌 잘 이뤄지지가 않는다. 보통 일을 밑으로 내리면 자연스럽게 큰 덩어리가 작은 덩어리로 쪼개지고, 그래서 위임이 잘 동작한다.
반면 개발 업무를 위임하는 건 증류에 더 가깝다. 끓는 점을 높여가면서 액체 혼합물을 하나씩 걸러내는 것이다. 가장 마지막에 남는 잔류물은 여전히 경영진의 역할이다. 즉 개발 업무는 아래로 넘길 수가 없고, 내 역할을 날카롭게 좁힐 수 있을 뿐이다.
다빈치 인기가 날로 커지는 건 경영진이 보는 위성 사진과 실무자가 보는 현미경 사이 전 구간을 기가 막히게 커버하기 때문 아닐까 싶다. 경영진 보고 때는 컨설팅에서 하던 대로, 실무자 데모 때는 스크럼 하듯이.
PE 고객들과 말이 잘 통할 때면 다빈치가 묘한 니치에 서 있다는 게 실감난다. Value Creation은 점점 더 IT 의존적이 될 것이 자명하다. 다빈치는 그 점을 이해하고, 멀티플을 높이거나 bottom line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양한 IT 과제를 난이도별로 제안하고 5-7년 로드맵을 제공한다.
이렇게 여러 각도를 활용해 결실 맺는 방법을 좀 더 알려보자는 마케터 분의 조언에 따라 넷플연가에 모임을 하나 개설했다.
나대는 것 같아 너무나 부끄럽지만… 그럴 때마다 속으로 되뇌는 말이 있다. "안주보다 실패가 낫다."
모쪼록 다빈치가 하는 게 뭐고 하려는 게 뭔지 여러 곳에, 여러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