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무와 업의 본질

by Dongeun Paeng
Mar 25, 2024 · 만 34세

업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고 이건희 회장이 했던 말이다.


테무를 억지로(?) 써보면서, 한 가지 자명한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바로 서비스/제품은 업의 본질을 중심으로 전개한다는 것이다.


테무가 추구하는 '커머스 업의 본질'이 뭘까?

바로 저렴함이다. 저렴한 제품에 환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우리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가방이나 옷을 살 때는 10만 원 더 비싼 명품을 기꺼이 사면서도, 고무 장갑을 살 때는 2천 원 더 아끼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테무는 업의 본질에 충실하다. UX도 좋지 않고, 사행성 게임 같은 요소가 있어 처음에는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사실, 유려한 UX와 간결함, 깔끔함 같은 것은 테무 업의 본질과 크게 관련이 없다. 즉 테무 앱이 애플 스토어나 마켓컬리 같은 느낌을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테무에서 맥북을 판매한다면 절대 사지 않았을 것이다. "맥북을 판매하는 업"은 테무와 그 본질이 다르다.

테무의 디자인은 테무가 추구하는 본질에 맞춘 실용(pragmatic) 디자인이다. 즉 좋은 디자인이다.


두 말 할 것 없이 애플 스토어나 마켓컬리도 좋은 디자인이다. 애플 스토어는 '맥북을 판매하는 업의 본질'에 충실한 디자인을 채택했고, 마켓컬리는 압구정 주부들에게 어필하는 디자인이다. 테무가 폭발 성장한다고 해서, 마켓컬리를 테무처럼 만들었다간 업의 본질을 잃고 말 것이다.


서비스/제품은 업의 본질을 중심으로 전개한다.


테무에서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물건들을 몇 번 구매하다 보니, 내 눈에 거슬렸던 장치들(구매의욕을 자극하는 저질 디자인)은 신경이 안 쓰인다.

지적하자면 손 댈 곳이 한두 개가 아니다. 폰트도 작고, 번역도 이상하다. 하지만 어설픈 디자인들은 금방 잊혀진다. 어차피 본질은 저렴한 가격이다.


테무는 마음껏 퍼준다. 상품 가격도 저렴하지만, 배송료도 아예 없고, 환불도 무료다. 그리고 절차가 간단하다. 그래서 충분히 만족스럽다.

'테무'라는 앱은 업의 본질을 중심으로 잘 전개한 제품이다. "무조건 저렴하게, 무조건 싸게, 무조건 퍼주기"라는 업의 본질에 충실하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볼 때, UI/UX가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큰 오류다. UI/UX는 '특정 업에서만' 중요하다.

일본 항공권이 7만 원이면 누구도 좁은 좌석을 불평하지 않는다. 7만 원 내고 오사카에 가면서 "이 항공사는 대한항공에 비해 UI/UX가 심각하군..."이라고 불평한다면 블랙 컨슈머다.


(잠깐 샛길로 가자면... 혹자는 UX(User experience) 안에 가격이 포함되고, 그렇게 본다면 위 항공사는 좋은 UX를 제공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틀린 말이다. 직함이 UX 담당자인 사람들 중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UX는 어디까지나 '제품/서비스에 적용되는 편의 요소'라고 한정하는 게 맞다.)


UI/UX는 업의 본질과 나란히 놓고 판단해야 한다. 예전에 올린 에서 비슷한 내용을 다룬 적이 있다.


채팅이라는 업의 본질은 외부 효과(externality)다. 많은 사람들이 익숙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토스 채팅은 문을 닫았다. UI/UX는 토스가 늘 그렇듯 타의 추종을 불허했을 것이다. 하지만 카카오톡을 쓰다가 토스 채팅을 쓸 이유가 전혀 없다. 위챗은 여전히 UI/UX가 엉망이다. 그래도 수억 명의 사람들이 사용한다. 중국에서 아무리 예쁜 앱이 새로 나와도, 절대 위챗을 대체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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