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별로인 책.
놀랍게도 Goodreads에서 166,549명이 이 책에 평균 4.12점을 매겼고, 아마존에서는 78,276명이 평균 4.7점을 줬다.
앞으로 Goodreads 평균 점수만 믿어선 안 되겠다. 중론과 내 의견이 왜 이렇게까지 다른 걸까?
의아한 마음에 Goodreads 리뷰를 자세히 살펴보니 좋아요가 가장 많이 달린 리뷰가 1점 준 리뷰다.
다음에는 상위 리뷰도 한두 개 정도는 읽어보고 책을 펴야겠다.
아무튼 이 책은 세상을 지독한 술수의 전쟁터라고 묘사한다. 한 마디로 책 내용이 거짓이다.
세상은 계략의 각축전이 아니다. 많은 위업이 이타성과 진정성에 뿌리를 둔다.
저자는 모든 사람이 약간의 가면을 쓰고 있다고 한다. 이 말에 공감한다. 하지만 나라면 가면 대신 사회화라고 표현할 것이다.
가면을 쓴다는 표현은 고의성을 내포한다. 하지만 인간이 여러 모습을 카멜레온처럼 갈아끼우는 건 사회에 동조하고자 하는 자연스런 안전 욕구이지, 치밀하고 계산적인 조작이 아니다. 따라서 사회화가 더 적절한 표현이다.
여기서 반전. 저자의 삐딱한 세계관은 내가 이 책을 별로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아니다. 그의 세계관은 아무래도 상관 없다. 나와 다를 수 있다.
비슷한 세계관의 명저 중에는 손자병법도 있고 군주론도 있다. 나는 두 책 모두 좋아한다.
요즘 나온 책 중에는 세이노의 가르침도 조금 비슷한 느낌을 주는데, 그 책도 나는 재밌게 읽었다. 공감하지 않는 부분이 꽤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별로인 이유는 책으로서 품질이 낮아서다. 즉 처세술을 담은 책이라기엔 논리가 약하고 구성이 어설퍼서다. 이 책대로 처세해보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실천으로 이어질 건덕지가 전혀 없다.
왜 그런지 분석해보자.
우선 책에 있는 법칙 48개가 모순의 짝을 이룬다. 예를 들어 어떤 권력자는 '화려함을 무기 삼아' 권력을 쟁취한 반면 다른 권력자는 '사람들과 거리를 둠으로써' 권력을 얻었다. 어떤 장에선 권력의 비결이 드러나는 것이라 하고, 어떤 장에선 숨는 것이라 한다.
저자가 책을 엮은 방식을 유추하면 왜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생기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저자는 역사 속 권력자들의 행동을 잔뜩 모은 후, 그 행동 양식이 권력의 비결이라고 단정한다. 즉 "이 사람은 권력자였으니까, 이 사람이 한 행동은 권력 쌓는 데 도움을 주는 행동이다."라고 인과관계를 주입한 것이다. 매우 초보적인 논리 오류다. 저자의 사고 방식은 "치열한 전쟁터에서 돌아온 병사들은 모두 부상을 입었으니까, 부상을 입는 게 생환에 도움을 준다"는 주장과 동치다.
차라리 다양한 역사 속 권력자들의 야사를 모은 책으로 구성하고, 각 일화로부터 독자 스스로 권력 형성 과정을 어렴풋이 느끼게 했어야 한다. 법칙을 제시하지 말고, 이야기를 그대로 유지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안톤 체호프, 제인 오스틴 같은 위대한 소설가는 다양한 등장 인물을 통해 교훈을 준다. 저자도 어느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이 소설가들을 깊이 존경한다고 했다. 이들의 소설에는 단 하나의 정답을 보여주는 인물이 없고, 등장인물 각자 개성을 표출한다. 그러면 독자는 자신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인물에 동화하면서,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교훈을 얻어간다.
안타깝게도 책을 다 읽으려면 아직 한 시간 정도 더 읽어야 한다. 규칙이 48개인데 아직 31개 밖에 못 봤다.
책이 별로면 그냥 중간에 덮으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언젠가 생겨버린, "시작한 책은 끝까지 읽는다"는 괴팍한 규칙 때문에 멈출 수가 없다. 안 좋은 책이라도 끝까지 읽어봐야만 그 안 좋은 내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니까. 종종 책 말미의 역자 평과 추천서가 내용 이해에 큰 역할을 하기도 하고. (물론 어려워서 중간에 덮는 책은 예외다.)
나와 생각이 정반대여도, 반박거리가 충분한 책은 차라리 좋은 책이다.
그런데 논리와 구성이 부실한 책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런 점에서 권력의 법칙은 정말 별로인 책이다.
(세상에... 이 글을 쓰고 오래 전 글을 읽고 있었는데 우연히 이 글을 발견했다. 7년 전에 거의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니. 그런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는 희미한 기억조차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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